만년 조연부터 대표팀 주전까지... 김수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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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털보티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2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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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기량이나 성적이 아주 비슷한 두 선수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이 비 시즌 FA를 영입할 때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바로 '나이'다. 아무래도 한 살이라도 젊은 선수가 전성기를 유지하는 기간도 길고 부상 위험도 적기 때문이다. 매년 전성기가 지난 노장 선수들이 FA 시장에서 만족할 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프로 출범 후 역대 최대 규모의 FA 시장이 열린 작년 V리그 여자부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생 김희진이 IBK기업은행과 재계약하면서 3억 원의 연봉을 받았고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로 이적한 1993년생 박정아도 2억5000만 원의 거액을 받았다. 반면에 V리그 여자부 역대 최고의 리베로로 꼽히는 김해란(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은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2억 원의 연봉을 받고 새로운 팀으로 이적했다.
6연속 챔프전 진출에 빛나는 기업은행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도 20대 초반의 리즈 맥마혼이나 매디슨 리쉘, 어도라 어나이를 지명할 정도로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는 팀이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작년 FA 시장에서 서른을 훌쩍 넘긴 센터 김수지를 2억7000만 원의 거액을 주고 영입했다. 그리고 이적 첫 시즌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김수지는 이번 시즌 점점 국가대표 주전 센터다운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건설의 만년 조연, 흥국생명 이적 후 전성기 시작
▲ 20대 후반부터 기량이 꽃 피기 시작한 김수지는 31세에 좋은 대우를 받고 두 번째 이적을 단행했다. |
ⓒ 한국배구연맹 |
김수지는 김동열 원곡중 감독의 딸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구를 접했다. '배구여제' 김연경(페네르바체)과는 안산 서초등학교, 원곡중학교, 한일전산여고(현 수원전산여고)에서 함께 운동을 했던 절친이다(김연경 역시 김수지의 아버지인 김동열 감독에게 배구를 배웠다). 김수지는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연경, 이소라에 이어 전체 3순위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초기 정대영(도로공사)에 가려 많은 기회를 잡지 못하던 김수지는 정대영이 FA 자격을 얻어 GS칼텍스 KIXX로 이적한 2007-2008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현대건설의 주전 센터로 활약했다. 김수지는 뛰어난 외발 이동공격과 빠른 타이밍의 속공, 그리고 정확한 서브구사능력까지 갖춘 팔방미인형 센터였지만 정대영 이적 후에도 팀의 중심이 되진 못했다. 정대영이 떠난 그 해 '거요미' 양효진(현대건설)이 입단했기 때문이다.
양효진은 입단 첫 해부터 현대건설의 주전 센터로 활약했고 3년 차가 되던 2009-2010 시즌부터 블로킹 타이틀을 독차지하기 시작했다. 김수지는 충분히 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양효진의 존재로 인해 언제나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간간이 대표팀에 선발될 때도 김수지는 정대영과 양효진의 백업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김수지는 2013-2014 시즌을 마친 후 FA자격을 얻어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당시 흥국생명은 배구계를 휩쓸고 간 승부조작 파동 이후 센터진이 매우 약해져 라이트 공격수 정시영(현대건설)이 센터를 맡는 힘든 상황이었다. 여기에 경험이 풍부한 김수지와의 계약은 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최고의 영입이었다. 김수지는 이적 첫 해부터 이동공격 3위(48.1%), 속공 7위(40.37%), 블로킹8위(세트당 0.51개)에 오르며 김나희(개명 전 김혜진)와 함께 흥국생명의 중앙을 지켰다.
김수지는 2015-2016 시즌에도 속공 3위(46.43%), 블로킹 11위(세트당 0.47개)에 오르며 흥국생명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리우올림픽에서 주전센터로 활약하며 더욱 기량이 성숙해진 김수지는 2016-2017 시즌 속공 1위(56.03%), 블로킹 4위(세트당 0.64개)를 기록하며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김수지가 맹활약한 흥국생명은 2016-2017 시즌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김수지는 시즌이 끝난 후 센터부문 BEST7에 선정됐다.
개인 기록으로 평가할 수 없는 '맏언니' 김수지의 가치
▲ 강하진 않지만 구질이 까다로운 서브도 김수지가 가진 무기 중 하나다. |
ⓒ 한국배구연맹 |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은 김수지는 박정아의 이적으로 선수층이 얇아진 기업은행으로 이적했다. 사실 김수지와 박정아는 포지션이 다른 만큼 김수지가 박정아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 받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은 김수지의 가세는 팀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센터로 외도했던 '토종 에이스' 김희진의 활용도를 더욱 끌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 김수지의 활약은 연봉 2억7000만 원 짜리 고액 연봉 선수의 활약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초라했다. 김사니 세터 은퇴 후 염혜선, 이고은(GS칼텍스) 세터와 호흡을 맞춘 김수지는 장기인 속공과 이동공격의 위력이 급격이 줄었다. 그나마 블로킹 부문에서 8위(세트당 0.51개)에 오르며 기업은행의 6연속 챔프전 진출에 기여했지만 이정철 감독과 기업은행 팬들이 기대한 활약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에도 국가대표 주전 센터로서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를 모두 소화한 김수지는 체력적으로 다소 힘든 시즌 초반을 보냈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세터 이나연과의 호흡이 맞아가며 점점 나아진 경기를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 21일 선두 GS칼텍스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7개의 블로킹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3-2 역전승에 크게 기여했다.
김수지는 이번 시즌 세트당 0.48개의 블로킹으로 팀 동료 김희진과 함께 블로킹 부문 공동7위에 올라있다. 여기에 블로킹이 자기팀의 공격으로 연결되는 '유효 블로킹' 부문에서도 세트당 1.76개로 KGC인삼공사의 한수지(세트당 1.77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비록 후위에 있을 때는 리베로와 자리를 바꾸는 포지션이지만 전위에 있을 때 만큼은 확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는 뜻이다.
김수지는 흥국생명 시절부터 경기에서 승리한 날, 그 날의 수훈선수에게 플라스틱 메달을 걸어주며 승리를 자축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김수지는 흥국생명 시절에 만든 '수지메달' 문화를 기업은행 이적 후에도 계속 이어왔다. 그만큼 팀의 베테랑 선수로서 동료들의 활약과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기업은행의 '맏언니' 김수지가 기록지에 나타나는 숫자보다 훨씬 가치 있는 선수로 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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