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7일 경기에서 나온 우지원(당시 모비스) 전 해설위원의 한 경기 최다 70점, 문경은(당시 전자랜드) SK 감독의 한 경기 최다 3점슛 22개, 김주성(당시 TG삼보)의 한 경기 최다 11블록슛이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프로농구 2003~2004시즌 연감. KBL이 매 시즌 종료 후 주요 이슈, 기록 등을 수록해 간행한다.

"프로농구 연감은 그 자체가 매우 공식적이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담은 것이다. 역사를 임의로 손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프로농구 관계자)

남자 프로농구를 주관하는 KBL이 15년 전, 역사에 몰래 손을 댔다. 2004년 밀어주기 파문을 일으킨 우지원(46) 전 해설위원과 문경은(48) 서울 SK 감독의 한 경기 최다득점·3점슛 기록 인정 여부와 관련해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당시 연감 내용을 9일 슬쩍 수정했다가 들통 났다.

SK의 김선형(31·SK)은 지난 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부산 KT와의 경기에서 49점을 올렸다. 김영만(47) 창원 LG 코치와 함께 국내선수 한 경기 최다득점 공동 3위로 정리됐다. 김 코치는 기아 소속이던 1997년 3월29일 나래를 상대로 49점을 넣었다.

김선형의 활약은 역대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재조명하게 했다. 농구계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15년 전의 '어두운' 과거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 경기 최다득점 1, 2위는 우 전 위원과 문 감독이다. 둘은 각각 70점, 66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 전 위원(당시 모비스)은 2003~2004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인 2004년 3월7일 창원 LG를 상대로 3점슛 21개를 포함해 70점을 넣었다. 문 감독(당시 전자랜드)은 같은 날 TG삼보전에서 3점슛 22개로 66점을 올렸다. 문 감독의 22개는 한 경기 최다 3점슛 기록이다.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정해진 뒤, 최종전에서 3점슛 타이틀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밀어준 결과물이다. 공격횟수를 많이 가진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팀도 암묵적으로 동조해 수비하지 않았다.

특히 문 감독을 상대한 TG삼보의 총 반칙은 4개에 불과하다. TG삼보에서는 김주성(40)이 블록슛 타이틀에 도전했고, 최종전에서 11블록슛을 기록했다. 한 경기 최다 블록슛이다. 블록슛이 포함된 트리플더블도 기록했다.

전자랜드 선수들이 림이 아닌 김주성의 손을 향해 레이업슛을 시도하는 장면도 나왔다. 이렇게 1위에 올랐다. 14분2초밖에 뛰지 않은 TG삼보의 양경민(47)은 3점슛 9개로 27점을 올리기도 한다. 정상적인 경기로 보기 어렵다.

개인상 밀어주기 담합, 타이틀 거래라는 후폭풍이 거셌다. 논란이 커지자 KBL은 기록에 대한 시상을 유보했고, 결국 폐지했다. 지금까지 기록 시상은 부활하지 않았다.

KBL은 매 시즌 종료 후에 출입기자단 소속 매체의 순번을 정해 시즌 리뷰, 구단별 리뷰 등을 연감에 담는다.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김선형의 49점 기록으로 2004년 밀어주기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KBL이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3점슛과 블록슛 부문에 특정선수를 밀어주기 위한 일부 경기는 많은 팬들의 비난 속에 결국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라는 2003~2004시즌 연감 내용을 '3점슛과 블록슛 부문에 특정선수를 밀어주기 위한 일부 경기는 많은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로 수정했다.

기록 인정 여부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 우려스러워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역사를 진지한 고민이나 논의 없이 바꾼 것이다.

연감은 KBL이 감수한다. 매우 꼼꼼하다. 민감한 부분은 인쇄 전에 삭제 또는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연감은 'KBL 맞춤형 오피셜(official)'로 평가된다.

KBL은 9일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2003~2004시즌 연감에서 문제가 된 기록들에 대해 '결국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문구를 '많은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로 수정했다. 몰래 고친 것이 알려지자 원래대로 바꿨다.

KBL은 연감을 수정하면서 당사자, 구단, 언론, 대중 어디에도 알리지 않았다. 글쓴이의 동의도 얻지 않았다. 

KBL 관계자는 "연맹에서 향후에 기록을 인정을 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해당 내용이 틀렸다는 부분으로 확인을 하고, 잘못된 정보 및 혼돈될 부분은 없어야 할것으로 판단해서 일단 바로 수정을 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15년 만에 오류를 확인했다는 주장이다. 몰래 수정한 게 알려지자 부랴부랴 원래 내용으로 바꿨다.

한 구단 관계자는 "연감을 손대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연감은 프로농구의 역사다. 임의로 수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류가 있다고 해도 과거 KBL이 승인하고, 결정했던 내용들일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감을 고치기 위해선 모두가 인지하고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그마저도 수정을 검토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바로 수정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KBL이 당시 '우 전 위원과 문 감독의 기록을 참고용으로만 삼겠다고 발표했다'는 내용도 알려졌지만 확인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관련해서 남아있는 자료는 없다는 답변이다.

KBL은"국내선수들이 좋은 기량으로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보다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프로농구를 선보일 수 있도록 독려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김선형에게 '49득점 기념상'을 시상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 우 전 위원, 문 감독에 대한 언급은 없다.

KBL은 지금이라도 15년 동안 '미운 오리 새끼'처럼 취급한 이 기록들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불명예스럽다고 여겨서 삭제할지, 미래 구성원들에게 반복해선 안 된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남길지. 먼저 정한 후에 연감 수정 여부를 논의하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