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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

황재균 “조촐했던 13명 사당초 야구부에서 꿈을 키웠죠”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 털보티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1-2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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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은 한국의 입시 경쟁을 다루고 있다.

KT 내야수 황재균(32)도 어쩌면 극중 인물 ‘예서’처럼 대학 입시에 몰두한 학생 중 한 명이 됐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많은 학원을 다녔다. 피아노, 속셈, 미술, 태권도, 한문, 수학에 집에서는 학습지까지 했다. 공부도 곧잘 했다. 사당초등학교 재학 시절 수학 경시대회에서 줄곧 전교 1등을 했다.



KT 황재균이 18일 자신의 모교인 사당초등학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야구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4학년 때 반 대항 야구대회를 했는데 황재균이 투수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사당초 야구부 감독이 황재균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구만화에 나오는 오랜 클리셰. “자네, 야구 한 번 해 볼 생각 없나.”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이었던 아버지 황정곤씨는 감독의 제안이 반가웠다. 그렇지 않아도 황재균에게 초등학교 1~2학년때부터 테니스를 시키려고 했던 터였다. 아들 황재균은 테니스에 흥미를 못 느겼고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KT 황재균이 18일 자신의 모교인 사당초등학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한 뒤 사당초 야구부 학생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야구도 마찬가지였다. “하기 싫다”라고 거부하는 항재균에게 아버지는 “지금 야구를 하면 다니고 있는 학원 다 안 다녀도 된다”라고 제안했다. 황재균에게는 나름의 ‘속셈’이 있었다. 그는 “사실, 그때 야구를 한다는 핑계로 학원을 모두 관둔 뒤 야구도 관두려고 했다. 그런데 야구는 다시 관둘 수가 없었다”며 빙그레 웃었다.

당시 사당초 야구부는 학생수가 겨우 13명인 조촐한 팀이었다. 9명의 선발 라인업을 간신히 짰고 뛸 사람이 없을 때에는 일반 학생을 데리고 나갔다. 황재균은 “일단 머릿 수만 채워놓고 우익수 쪽에 세워두고 경기를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대회에 참가해 경기 전 인사를 할 때면 상대팀은 30명의 선수들이 일렬 종대로 서는데 사당초 야구부는 절반이 안 됐다. 인터뷰를 한 지난 18일에도 10명이 안 되는 8명의 사당초 학생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들을 바라보던 황재균은 “우리 때는 담장도 쉽게 넘겼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황재균의 꿈은 더 커졌다. 어릴 적 TV를 통해 봤던 메이저리그 박찬호의 모습은 항상 그의 마음 속에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테니스 선수 출신인 어머니 설민경씨는 아들이 운동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다가 이수중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조력자가 됐다. 황재균은 “‘내가 할 수 있는게 야구밖에 없다’라고 생각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갈 길이 정해지고 나서부터는 앞만 보고 달렸다.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운동에만 전념했다. 경기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아버지를 졸라 사설 시설에서 따로 웨이트트레이닝을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현재의 키인 1m83까지 자랐던 이 때부터 체력적으로 파워를 갖추기 시작했다.

3학년에 진학한 후에는 ‘프로 입단’이라는 새 목표가 생겼다. 방학 때에는 합숙 훈련을 하면서 새벽 3시까지 배트를 휘둘렀다. 프로에만 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24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의 지명을 받아 목표를 이뤘다.

프로 입성 이후에는 새로운 산들을 계속 넘었다. ‘3년 안에 1군에 입성하자’는 목표를 잡았던 황재균은 2007년부터 1군 무대에서 활약했다. 2010년 7월에는 롯데로 트레이드 됐고 새 팀에서도 주축 선수로 발돋움했다.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금메달을 따 어머니와 함께 모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영광도 안았다. 2017년에는 꿈에만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지난 시즌부터는 KT로 돌아와 이제는 2019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인생의 길은 사당초등학교로부터 시작됐다. 집 근처에 있던 학교가 황재균이 첫 걸음을 뗀 곳이다. 모교에서 초심을 다시 찾은 황재균은 2019시즌에도 또 다른 새로운 걸음을 준비한다. 그는 “홈런 20개 뿐만 아니라 도루도 20개 해서 20홈런-20도루를 달성하고 싶다. 또한 올해에는 팀이 5위안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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