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9 V리그 정규시즌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 한국전력 서재덕(30)만큼 명암이 극명히 교차했던 선수도 없다.

한국전력은 개막 이후 16연패로 최하위를 굳혀 놓은 채 시즌을 보냈다. 개막 직전 교체된 외국인 선수가 부상으로 5경기 만에 떠나는 바람에 외국인 선수 없는 레이스를 해야 했다. 서재덕은 팀 주장까지 맡았지만 한국전력의 추락을 막을 길이 없었다.

지난달 말 경기 의왕시 한국전력 배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서재덕은 지난 시간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았다. “라이트로 뛰고 싶다는 소망을 이뤘고, 주장으로 후회 없이 배구를 했으니 올 시즌은 기억에 남는 시즌”이라고 답했다.

서재덕은 팀의 부진에도 올 시즌 V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됐다. 올스타전 남자부 팬투표 1위 선수의 영예를 얻었다. 지난 1월10일 올스타전에서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묘사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본떠 ‘덕큐리’로 등장해 팬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서재덕은 “올스타전을 즐기라고들 하는데,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과연 내가 올스타전을 즐길 수 있을까’ 싶었다”며 “팀 성적은 좋지 않은데 내가 팬들에게 너무 가벼워 보이면 반응이 좋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덕큐리에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지 않았다. 그가 ‘에~오’라고 선창하자 대전 충무체육관을 가득 메운 배구 팬들은 기쁜 마음으로 멜로디를 따라 불렀다. 올스타전 MVP로도 뽑혔다.

팬들이 서재덕에게 뜨거운 성원을 보낸 것은, 서재덕이 분투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서재덕은 이번 시즌 자신의 ‘1경기 최다득점 기록(41점)’을 세웠고, 팀 내 공격 점유율이 다른 팀 외국인 선수 못지않은 30% 초·중반대에 달했다.

서재덕은 외국인 선수 대신 라이트 포지션에서 팀의 주 공격수 역할을 했다. 왼손 공격수로 성균관대 재학 때까지 라이트로 뛰었지만 프로에선 주로 레프트로 뛰어온 서재덕은 “프로에서도 라이트로 뛰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면서도 “시즌이 긴 프로에서 라이트로 뛰다보니 체력관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재덕은 그러한 가운데 성장했다. “시즌을 치르면서 매 순간 100%를 쏟는 게 능사가 아니라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며 “접전에서 결정적인 공격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많이 겪으면서 기술도 많이 향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재덕은 쉼 없이 달려온 배구선수 생활을 잠시 멈춘다. 이르면 다음달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될 예정이다. 약 2년간 실전을 치르기 어렵게 되는 게 아쉬울 법도 하지만 서재덕은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고 선수생활에도 터닝포인트가 되리라 믿기에 걱정은 안한다”고 말했다. 

서재덕이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올 시즌 생생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서재덕은 “일과 후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한다. 오래도록 배구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싶다”며 “한국전력에서 오래 뛰면서 20대 청춘을 바친 팀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또 “힘든 일도 많았는데, 늘 저와 한국전력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며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