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시대에 절실한 팀 케미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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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털보티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4-0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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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로스포츠에서 데이터를 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에서 인간관계를 제외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요소들이 데이터로 환산되는 지금, 데이터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팀워크, 즉 케미스트리도 그러한 부분 중 하나다.
※ 본 기사는 농구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됐던 내용입니다.
# 숫자로 표현되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여느 프로 구단과 마찬가지로, NBA 구단에도 데이터와 친숙한 경영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휴스턴 로케츠의 대럴 모리 단장처럼, 자료 분석이 농구 코트보다 더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구단의 운영 방침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전보다 합리적인 운영, 한층 더 날카로운 분석이 365일 내내 감독 및 선수들과 붙어 다닌다.
다만 숫자로 표현되는 부분들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치화되기 힘든 부분들은 소홀해지고 있다. 야구의 세이버메트리션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NBA 구단들의 경영진들이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을 경시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숫자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은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최근 야구계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팀 케미스트리다. 선수 간의 관계, 선수와 감독의 관계, 혹은 팀 케미스트리는 숫자로 정량화하기 어렵다. 이를 대체할 만한 숫자도 없다. 어떤 이들은 패스를 주고받는 횟수로 측정하고자 하는데, 서로 케미스트리가 안 좋아도 패스를 많이 주고받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러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선수의 퍼포먼스 기록만으로 라인업을 구성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 대니 에인지가 간과한 것
4월 3일 현재 보스턴 셀틱스의 성적은 46승 32패로 동부 컨퍼런스 4위이다. 시즌 시작 직전까지도 올 시즌에 60승 이상의 승수와 동부 컨퍼런스 1위의 성적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동떨어져 있다. 주전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전력이 약화된 것도 아닌데, 오펜시브 레이팅 10위, 3점슛 성공률 6위로 여전히 공격 관련 숫자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 역시 케미스트리에 있다.
시즌 중반에 마커스 모리스가 팀 내부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그의 입에서 긍정적인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데이터와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의 총합으로만 따져 보면, 보스턴은 밀워키, 토론토와 동부 컨퍼런스 선두 경쟁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동부 컨퍼런스 상위 시드도 쉽지 않았다. 전반기 기준으로 밀워키와의 경기 차는 12경기 차이다. 악화된 팀의 분위기가 시너지 효과를 고스란히 깎아먹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에 보스턴 셀틱스의 어린 선수들은 카이리 어빙과 고든 헤이워드 없이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탓에, 속된 말로 어린 선수들의 머리가 대니 에인지 단장의 예상보다 빨리 컸다.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은 이런 상황을 전혀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과 달리 프로 무대의 선수들은 머리가 클수록 팀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감독이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다. 일일이 선수들과의 관계와 선수들 간의 조합을 신경 쓰기 어렵다. 그래서 라커룸 분위기를 잡을 리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의 역할의 교통 정리도 가능하고, 승리에 필요한 끈끈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실상 라커룸 리더가 선수단 분위기를 실질적으로 잡는 주장에 가깝다. 그런데 이미 테리 로지어를 비롯한 보스턴의 여러 선수들은 카이리 어빙, 고든 헤이워드에게서 멀어졌다. 어빙이 하는 말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있으며, 어빙이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데에 거부 반응을 하고 있다. 물론 팀의 에이스가 어빙이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리더는 어빙이 아니다. 어빙은 진작에 라커룸 분위기를 잡는 데 실패했다. 헤이워드도 실패한 건 마찬가지다.
사실상 셀틱스는 리더 하나 없이 굴러가는 조직이다. 리더십도 없고, 케미스트리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리스가 불만을 털어놓은 이유이다. 에인지는 어린 선수들의 재능으로 동부 컨퍼런스를 제패할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 어린 선수들은 동부 컨퍼런스 우승보다 자신의 영달에 더 관심이 있었다. 에인지는 교통정리가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착각이었다. 지금까지도 선수단의 내부 정리는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에인지 단장이 케미스트리의 영향을 간과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낸, 긍정의 힘
올 시즌에 부진한 경기가 참 많아서 팬들의 비난을 매번 피해가지 못하는 러셀 웨스트브룩이지만, 케미스트리나 리더십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좋은 소리 들을 자격이 충분하다. 어찌 보면 그의 브랜드인 ‘Sure why not’이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의 팀 케미스트리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시즌 막판 침체기를 겪어 8위(44승 33패)로 내려앉긴 했지만, 올 시즌 이 팀이 보인 성적은 개인의 힘만으로 성취하기 쉽지 않다.
사실 웨스트브룩, 조지를 제외하면 이 팀은 올스타로 거론될 선수가 전혀 없다. 나머지는 특정 부분에만 특화된 롤 플레이어들이다. 재능의 총합으로는 특출나다고 보기 어려운 팀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롤 플레이어들의 조합을 잘못 짜면 원하는 성적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 라인업 안의 구멍을 서로 메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곳곳에 드러난 라인업의 구멍들을 이 팀은 팀 케미스트리로 메워나간다. 이른바 죽의 미학으로 비유 가능하다 죽 한 숟가락을 퍼 올렸을 때, 그 자리에 나머지 죽이 흘러 내려와 그 자리를 메우듯이, 서로의 빈 자리를 끈끈하게 메워준다. 그것이 오클라호마 시티의 케미스트리이며 이는 숫자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공백이다.
오클라호마 시티는 수치로만 보면 딱히 우수한 지표를 보여주는 팀은 아니다. 2018-2019시즌 전반기까지 30개 팀 중에서 오펜시브 레이팅 13위, 야투율 15위, TS% 21위, 자유투 성공률 27위에 그쳤다. 비록 평균 득점 전체 5위지만, 이는 순전히 경기 페이스가 리그에서 두 번째로 빠르기 때문에 나온 수치이다. 고효율 공격 지표를 자랑하는 골든 스테이트나 밀워키와 비교하면, 오클라호마 시티의 공격은 저효율에 가깝다.
대신 수비의 주축인 안드레 로버슨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디펜시브 레이팅에서 리그 10위다. 한때는 5위 안에 올라있기도 했다. 공격 지표에서의 부족함을 수비로 자연스레 보완한다. 하지만 이 팀의 수비를 단순히 레이팅으로만 주목할 수는 없다. 오클라호마 시티에서는 수비하다가 실점해도 서로를 탓하는 일이 없다. 항상 “Nice D!”라고 다독이고 독려한다. 그 독려는 대부분 웨스트브룩의 몫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인터뷰 때마다 웨스트브룩이 매번 언급하는 내용이 있다.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야투를 계속 실패해도, 수비 과정에서 실점해도, 웨스트브룩은 긍정적 확신을 지우지 않는다. 얼마든지 다음 기회에 만회하면 된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코트 위에서 “Sure, Why not?”을 멈추지 않는다. 그 영향은 폴 조지부터 디온테 버튼까지 모두가 받는다. 그것이 웨스트브룩이 케미스트리의 농도를 짙게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 조직은 수학이 아니다
팀 케미스트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재능 덩어리 크기만 더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이다. 데이터의 수학적 해석으로 얼마든지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도 착각이다. 조직은 수학이 아니다. 케미스트리에 따라 계산 결과는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수학처럼 덧셈이나 곱셈을 하면 결과값이 그대로 나올 거라는 착각을 하는 팬들이 많고, 심지어 구단 관계자들마저 그런 착각에 빠지곤 한다. 데이터는 사람이 사는 세계를 100% 해석해내지 못한다. 데이터 분석에 치우친 구단 운영 방침은 데이터가 가진 인사이트를 퇴색시킬 것이다. 팀을 표현하는 숫자들이 훌륭한데, 막상 결과가 좋지 않은 팀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숫자가 채울 수 없는 자리를 무형의 케미스트리로 메우며 결과의 반전을 이끌어낸다. 팀 스포츠에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NBA 구단들이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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