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자스민 공주는 대중을 열광시켰다. "난 침묵하지 않겠어, 계속 나를 입다물게 할 수는 없어, 나는 내가 조용히 있지 않을거란걸 알아, 나는 이렇게 숨쉬고 있으니까. 절대 나를 과소평가하지 말아." 주제곡 '스피치리스(Speechless)'의 노랫말은 자스민 공주를 새로운 시대의 히로인으로 격상시켰다. 

일상적 성차별에 무방비로 노출된 과거 여성들이 오랜 불평등과 부당함에 침묵(speechless)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면, 영화 속 자스민 공주는 통치자의 아내가 아닌 통치자를 꿈꾼다. '스피치리스'의 과거와 결별을 선택한 현대 여성들의 자아를 대변하는 캐릭터인 셈이다. 

남성 캐릭터의 성장을 돕는 도구에 머무는 대신, 스스로의 욕망을 당당히 드러내는주체로 한걸음 나아간 자스민 공주는 2019년 지구촌 사회변화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인물이다. 가부장제적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성(girlishness), 즉 '여자다움'의 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인만큼 극 중 '스피치리스'를 부르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한계지만, 바로 그 '스피치리스'가아름다운 선율과 매끈한 만듦새만이 아닌 메시지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는 풍경은 그 자체로 과거와 다른 변화를 의미한다.바야흐로, 지금은 페미니즘이 주요 화두인 시대라는걸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알라딘의 스피치리스, 월드컵의 페미니즘

대한민국의 조별리그 탈락으로 국내에선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던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은 성공적인 흥행 - 대회 기간 동안 치러진 52경기에는 146골(경기당 2.81골)이 터졌고, 무려 110만 명이 넘는 관중(평균 21,756명)이 모였다 - 외에도 여자축구의 괄목할만한 성장세와 전지구적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대회로 평가된다. 여기에, 축구장에서 페미니즘의 물결이 넘실거린 대회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이벤트로 기억될 것 같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역대 첫 페미니즘 월드컵으로 불러도 좋겠다.) 

이전 대회부터 이어진 축구장 내 여권 신장의 목소리는, 이번 월드컵을 전후로 축구계 내부의 다양한 성 평등 이슈를 건드리며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대회 기간 중 관중석 곳곳에서 울려퍼진 '여성 찬가'를 비롯, 결승전이 끝난 뒤 이어진 시상식 도중 객석을 메운 군중이 '똑같이 뛰는데 왜 수당은 다른가'를 항의하는 'Equal play, equal pay'을 오랜 시간 한 목소리로 외친 장면은 이같은 흐름을 상징한다. 

이처럼 대회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소화된 성 평등 관련 이슈는, 여자 월드컵이 단순한 축구 대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걸 보여준다. 아울러 월드컵 기간 중 지구촌 곳곳에서 축구장 안팎의 성 차별 해소 문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환된 것은 여자 월드컵이 이뤄낸 사회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남녀의 '차이'와 '차별'의 다름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전지구적 토론이 불가능하지 않다는걸 체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