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따 대상이 유부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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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도 연말 즈음에 강남에서 군대 동기들이랑 술을 마시고 있었음. 칙칙한 고추들끼리 지나간 군 생활이나 곱씹으면서 한창 소주병을 까는 중이었는데 문득 창가 쪽 테이블에 앉은 긴 생머리에 단정한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분이 시야에 들어옴. 당장 내가 엊그제 딸을 몇 번 쳤는지는 기억을 못 하지만 그 여성분의 얼굴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음. 드라마 도깨비 시절 유인나의 사촌 동생쯤 되어 보이는, 단아한 상견례 프리패스 상이셨는데 특히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괜히 자꾸 힐끗 쳐다보게 되더라.. 그러다 소주 몇 잔 더 들이키곤 전쟁 선봉장처럼 위엄적으로 동기들한테 "번호 물어보고 올게" 하고 여성분한테 갔음. 여성분은 동성 일행분과 둘이서 점잖게 술을 드시고 계셨는데 나는 테이블로 다가가서 최대한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하면서 "저, 저... 죄송한데 제, 제가 이런 적이 처음이라..." 혀가 뇌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며 애써 꾸역꾸역 말을 이어갔음. 그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일행분은 전성기 개콘을 직관한 것처럼 깔깔 웃기 시작하셨고 나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내밀면서 "혹시 괜찮으시면 번호 주실 수 있으세요?" 멘트를 쳤음. 딱히 목소리를 크게 낸 것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의 이목이 내 쪽으로 집중되고 있는 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여성분은 상냥한 눈웃음으로 나를 한 번 쳐다보시곤 핸드백에서 폰을 꺼내 나한테 내미셨음. 네 번호를 찍어라. 그런 의미가 아닌, 폰 케이스 뒤에 고이 넣어둔 영아 사진을 보여주기 위한 의미로. 아기가 엄마를 쏙 빼닮아서 참 귀엽고 예뻤음.. 상황을 파악한 나는 거듭 죄송하다면서 부복하듯이 머리를 조아렸고 여성분은 오히려 죄송하다면서 맑은 미소로 술 한잔 마시고 가라면서 새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주셨음. 나는 공손하게 소주잔을 건네받아 입에 털어 넣었고, 쓴 이별주를 마저 꿀꺽 삼키곤 자리로 복귀함. 그날 이후 몇 달간 동기 새끼들은 나를 '미시 킬러' '노 키즈 카페' '사랑과 전쟁' 등으로 처 부르기 시작했음.. 지금쯤이면 그 여성분의 아기도 어느덧 유치원을 다니고 있겠지.. 남편분은 전생에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격퇴한 난세의 영웅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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